무진장 흔들리는 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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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뮤지컬을 보는 내내 떠올랐던 단어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람이야. 이 사람사는 세상, 사람답게 살 수 없을까.

보기 전에 어두운 이야기. 가슴 아픈 이야기라는 말을 먼저 들었습니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들었고요.
그래서 머리켠에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들 이야기겠구나. 하는....
누군가를 불쌍하다고 동정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이 이야기가 그냥 그런 불쌍한, 가슴아픈 사람들의 이야기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단칸방 월세에서, 월세 하나 벌기 힘든 세상. 사장 한 마디에 잘려도, 잘못된 거 알면서도 꼭꼭 입닫아야 하는 세상. 장애인. 부모보다 오래 사는 게 걱정인 이야기. 베트남 처녀. 그리고 불법체류자, 밀린 월급 받지 못해도, 맞아도 따지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

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사는 이야기였습니다.
뮤지컬, 가상의 연극적 연출을 통한 이야기라기보다, 시나리오 작가, 감독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한 동네 사람사는 모습을 잠깐 엿 본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슬펐고 속상했습니다.
장애인 자식 두고 먼저 죽는 게 걱정인 할머니 모습이 슬펐습니다.
받은 월급보다 밀린 월급이 더 많은 그 사정이, 고향에서 기다릴 가족의 모습 때문에 더 속상했습니다.
베트남 처녀 이야기를 하다 한국인 여자가 다른 나라 사람과 어울리는 모습에 자기 애인도 아닌데  시비를 거는 아저씨들의 모습이 더 화가 났습니다.
나이 많다고 옳은 말 했다고, 사장 마음에 안 든다고 잘린 그 맏언니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랐고요.
그런 상황에서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 다른 점원, 그리고 나의 모습도 그럴 것이라는 것에 더 씁쓸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름 즐겁게 삽니다.
빨래가 바람에 날리며 마르듯, 사람들 인생 바람에 날리며 가는대로 삽니다.
웃으면 웃는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화가 나면 화를 내면서, 그러면서 함께...

빨래가 더 마음에 와 닿고, 눈물이 더 나왔던 건 꾸며쓴 티가 나지 않아서입니다.
대사도, 행동도, 캐릭터도 일부러 연극적인 요소를 위해 과장하거나 일부러 사건을 만듭니다.
하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사건은 인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몇 번 반복해서 이제는 질리기까지 한 말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한 번씩 들어보고, 겪었던 사건입니다.
여자 때문에 욕하고 발길질 하는 그 아저씨들 모습은 늦은 밤 한바탕 술마신 아저씨들에서 한 번은 봤던 일입니다.
장애인 이야기 역시 그렇고, 부당해고, 특히 상사 눈치보는 것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정말 좋은 공연 봤습니다.
우리네 세상 사는 이야기라 더 감동하고, 더 공감이 갔습니다.
결말은.. 사실 같이 봤던 언니 말대로 해피 엔딩은 아니지요. 아니, 연극 자체에서 해피 엔딩이지만, 계속해서 어려운 일이 닥칠 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전 안 됐다는 느낌보다 그렇게 인생 사는 거고, 그렇지만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아갈 거야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이 돌아가는 건 절망, 어두운 일이 몰아닥칠테지만, 왠지 모르게 그럼에도 조그만 행복을 찾으며 즐겁게 살 거 같아요.
나영과 솔롱고 커플은 그런 느낌을 줬거든요.

사실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우리 인생이 딱 문제가 해결되는 게 있나요? 문제가 생기고 힘들고 투정부리고 화내고 소리지르다가 다시 살아가는 거 잖아요. 해결된 것 없어도 나름 술마시며, 사람 사귀며, 수다 떨며 위로하고, 위안 삼으며, 그렇게 웃으며 살잖아요.
빨래에 나오는 등장인물처럼 말이지요.

보고서 나 자체가 감정이 정화된 듯 해요. 많이 울기도 했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 모습에, 결말이 떨어지지 않는 그 엔딩장면에 그 느낌이 더 했던 듯 합니다.

정말 좋은 공연이었어요. 내용 뿐 아니라 음악도, 연기도 말이지요. 음악은 아직도 귓가에서 맴돌고 있어요. 듣기 편하고 귀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였거든요. 화음도 좋았고요. 가사 역시 가슴에 무척 와 닿았지요. 배우들 연기도 무척 좋았습니다. 전 첫 공연이라 다른 배우들과 비교할 대상도 없고, 다들 기본 이상의 연기를 해 줬기 때문에 무척 좋았어요. 이 배우들로 호흡이 맞은지 얼마 안되어 약간 어색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게 크게 느낌도 안 줬고요.

정말 좋은 공연을 보고 왔습니다. 오늘은 그 좋은 공연덕분에 행복했던 하루였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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