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 

CAST : 정문성(김명준 역)  김종구(박수환 역) 김대종(안종태 역) 김대현(서민영 역)

모범생들, 제목과는 다르게 "모범"적인 학생들의 전혀 "모범"적이지 않은 이야기.

이야기는 10년 후 결혼식장에서 동창생인 명준과 수환이 만나는 부분부터 시작된다.
만남의 장소는 화장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적절한 장소다.
거울 보고, 몸단장 하고, 옷깃 세우는데 화장실만한 장소가 어디 있겠나.
첫 부분은 마치 수컷들의 뽐내기 겨루기를 연상케했으니까.
자기 자신을 뽐내는 동시에 옆 사람을 의식하고, 견제하는 그 시선이 말이다.
다들 뮤지컬 배우 출신이다 보니 박자감각이나 몸동작이 남달랐던 점도 보너스!


오랜만에 본다고 반가워하지만 말 속엔 가시들. 서로를 깎아내리는 듯한 말투.
그러면서 추억을 되새기기 시작하는데....


약간의 시놉시스를 보고 갔기에 중심 배역, 동창생들이 4명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두 명이 먼저 등장하고 한참을 그 두 명이서 이야기를 끌고 가기에 나름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 상상을 펼쳐갔다.
앞으로 이렇게 될 거야... 하면서. 뭐, 결과는 완전 헛다리를 짚었다.
내 예상보다 이야기는 더욱 더 씁쓸했다. 그리고 갑갑했다. 


보통 학창시절을 추억하며 전개해나가는 이야기들은 대개 한 사람이 죽고, 또 비교적 선인과 악인으로 나뉜다.
상황에 의해서든, 타고난 천성에 의해서든. 학교폭력과 왕따 역시 주된 소재이기도 했고.


물론 이 연극 역시 폭력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건 곁다리일 뿐. 중요한 건 이 인물들을 둘러싼 상황이다.
그리고 그 둘러싼 상황이 현실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더욱 씁쓸하고 암담했던 거고.


명준과 수환은 모범생들. 외고에 들어올 실력이니 공부야 잘 했고,
불만이 있긴 하지만 그닥 사고를 일으키지도 않고, 착실한 학생들.
하지만 가정형편때문에 성적을 올리는 데 더욱 더 필사적이게 된 명준이 중심이 되어 둘은 컨닝 계획을 짜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컨닝계획을 얼떨결에 알게 된 문제아 종태까지 끌어들이게 된다.


종태는 좀 순박한 캐릭터다. 사고를 일으키긴 하지만 본성은 나쁘지 않고.
적응을 잘 하지 못하고 싸움만 하는 상황에서 친구라면서 꼬시는 둘에 넘어간 것을 보면 좀 외로웠던 듯 싶다.


민영은 정말이지 얄미운 반장. 자기 잘난 줄 아는 캐릭터다.
집은 잘 살지. 성적은 0.3% 안에 들지, 그야말로 모든 걸 다 가진 캐릭터.
그러나 공감과 배려 능력은 제로.


이 연극에서 원인과 결과만 따지면 나쁜 놈은 명준과 수환이다.
컨닝계획을 세웠지, 민영을 협박해서 수학 답안지를 보여주게 만들지,
종태를 꼬셔서 자기 마음대로 움직인 다음 종태에게 모두 죄를 몰아서 희생양으로 만들어버리니까. 원인과 결과만 따진다면.


그러나  이게 단순한 학창시절의 이야기도 아니고 그 뒷맛이 씁쓸한 이야기라는 건 민영이라는 인물때문.  
그리고 민영의 존재는 이야기의 역학구조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민영이는 일방적으로 당하는 희생양이 아니다. 그는 시종일관 명준 무리를 깔본다.
원래가 태생적으로 다른 인간이라는 게 민영의 말.
"나는 태어날 때부터 너희와는 다른 인간이야. 너희가 대학에 다닐 때 나는 어학연수를 갈테고,
대학원에 다닐 때 난 유학을 가고 있을 거고, 회사에 입사할 때 나는 회사를 차릴 수 있다.
너희와 난, 출발선이 달라" 이건 과장이 아니다.
실제 민영은 돈이 있었고, 머리도 뛰어났다. 더군다나 협박받는 위치에 있으니 그는 도덕적으로도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고, 정의의 입장에서 불의에 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웃는다.
선하고 부드러운 민영이 활짝 웃는 그 순간, 그 미소는 솔직히 굉장히 징그러웠다.
왜냐고? 그건 민영의 생각이 너무나도 역겨웠기에.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서 자신이 옳은 정의라고 믿는다.
주위를 돌아보지도 않고, 공감하려 하지도 않는다. 공감, 배려심을 가지지 못한게 인간일까?
조금 딴 생각이지만 최근에 읽었던 꼭두각시 서커스 만화의 일그러진, 징그러운 미소가 연상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민영이가 한 말을 그대로 명준이 반복한다는 것.
그는 불공평한 세상에 태어났고,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렇기에 불리한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민영이와 똑같은 말을 하고, 어느새 그는 민영이와 같은 부류에 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그 부류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그 부류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 거지.
민영이와 같은 수준이라 자기 암시를 하면서.


처음에 이야기했던 결혼식장. 종태도 수환과 명준을 보러 온다.
그는 결혼은 축하하기 위해 온 것보다 사실 수환과 명준 때문에 온 것이다. 오면서 그 둘을 보지 않길 빌었지만. 


그러나 그 잘난 서민영의 결혼식장에서 수환과 명준은 있었다.
그렇게 모멸감을 받고서도. 그리고 잘났다고 떠들어댔던 서민영은 그 자리에서도 그렇게 잘나게 서 있었다.
아무 것도 바뀐 게 없다.


바뀌었다면 종태의 위치였을까? 수환과 명준의 삶에서 벗어난 종태.

사회의 주류에 편승하고, 그 이상을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 그게 소위 말하는 잘났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모범생들. 그리고 악순환.

요즘 사회의 모습이 느껴지기에, 그래서 더욱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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