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연극을 보러가면 무대의 구성에 참 많이 놀란다.

극을 구성하고 연기를 해 나가는 방식에 따라 무대가 다르다.

이번엔 따로 무대가 없고, 둥글게 의자만 배열. 그리고 배우들은 그 의자 사이로 옮겨가며 연기를 펼친다.


덕분에 무대 위에 이미 네 명의 배우가 등장했음에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또는 대화, 자세에 따라 네 배우가 다른 공간, 또는 다른시간에 있는 느낌을 준다.


주요 등장인물은 형사, 경호(수진 아빠), 규연(수진 엄마)  수진이다.

이 네 사람이 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든 관객에게 주어질 서사적 정보】

#1.과거에 기자였던 경호는 극단적인 우울증에 빠져있는 규연과 미스터리한 양상의 부부관계이다. 규연은 경호를 극단적으로 증오하고 있고, 경호는 규연의 그런 증오의 양상을 끝없이 받아들이고 보살피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경호가 잃어버린 딸 수진을 찾았다고 말한다.
#2.어린 딸을 잃어버린 날, 규연은 남편이 내연행각을 하느라 딸을 방치했다고 형사에게 말한다. 규연은 어린 딸이 남편의 내연녀에 의해 유괴됐다고 형사에게 말한다.
#3.15년 전 잃어버린 딸을 찾아 경찰서를 헤매던 경호는 어느 날 경찰서에서 이름과 신상명세가 일치하는 수진을 찾아낸다. 하지만 수진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다고 한다.
#4.수진은 자신이 경호의 딸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경호를 계속 만나 대화한다.
#5.규연은 수진이 유괴되고 며칠 후 변사체로 발견됐다고 한다.
#6.경호는 수진이 지금 이리로 오고 있다고 한다.
#7.믿음과 기억이 다른 세 사람이 한 자리에서 만난다.

출처 : http://webzine.e-stc.or.kr/01_guide/actpreview_view.asp?Idx=164



경호와 규연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심지어는 수진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다르다.

또한 수진이란 아이 역시 자신의 부모가 죽었지만, 그럼에도 경호를 계속 만나고 마지막엔 어느새 딸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연극의 제목 "믿음"이란 건 어떻게 생기는 걸까? 

같은 사건을 이야기하는 그 기억마저 이렇게들 다른데.


이 연극을 보면서 내 머리 속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실제 일어났던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이들은 왜 서로 다른 이야기를 주장하고 있을까?


일단 내가 생각하는 이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은...


- 경호는 수진이가 실종된 날 외도를 했을 것이다. 그는 유괴범이 잡히는 바람에 그 날 경찰서에서 중요한 기자회견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 날 꼭 수진이와 함께 보내기 위해 집에 가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기자회견도 없었고, 수진이가 실종된 날과 수진이의 생일을 함께 엮어서 "그 날만큼은 꼭 집에 가려고 했다."라고 주장한다. 


- 수진이는 유괴되지 않았고, 실종되었다. 규연은 내연녀가 전화를 걸었고, 그 여자가 자신의 딸을 납치했다고 계속 주장한다. 그럼에도 전화통화 내용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질 못한다. 또한 그 날 집으로 온 전화는 남편에게서 온 전화 2통 뿐이었다. 덧붙여 규연은 수진이가 당시 어디에 있었고, 무얼 하고 있었는지 기억을 제대로 하질 못한다.


- 수진이는 죽었다. 후에 경호가 찾았다던 수진은 사실 경호의 딸 수진이 아니다. 규연은 수진이의 죽은 모습을  보았다. 또한 중간에 지나가는 이야기로 경호는 수진의 비염 이야기를 한다. "그 조그마한 몸에서 무슨 피를 그렇게 많이 흘리는지... 백혈병, 혈우병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비염이더라...." 둘 다 수진이의 죽은 모습을 봤던게 아닐까. 


- 경호가 만난 수진은 자신이 경호의 딸 수진이 아님을 안다. 그럼에도 그는 경호를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경호의 딸 수진처럼 변해간다. 아니, 그렇게 믿는 것 같다.


그리고 연극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수진의 죽음엔 경호 뿐 아니라 규연 역시 죄책감이 큰 것 같다. 물론 규연은 그 화살, 책임을 경호에게 돌려버렸지만. 그것을 느꼈을 땐 규연이 수진의 죽음을 묘사할 때. 

굉장히 일상적인 풍경 사이에서 수진의 죽은 모습을 묘사한다. "깨 볶는 냄새" 라고... 물론 일상적인 것 사이에 참혹한 모습을 표현하면서 불행을 극대화시키는 묘사도 있긴 하지만 규연의 표현은 그런 느낌을 주지 않았다. 어쩌면 규연은 남편의 외도, 자신의 우울증 때문에 아이를 방치한게 아닐까. 그리고 그 결과 수진이의 실종되고 죽은게 아닐까. 내연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아이를 데려가 유괴, 실종된게 아니라, 아이가 혼자 놀다가 발을 헛딛는 그런 일상적인 사고를 당했던 게 아닐까. 더군다나 어디에서 노는지 엄마가 몰랐더라면...


이 네 사람의 기억은 뒤죽박죽이다. 심지어는 형사마저도. 수진이가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 알고 있을 그 형사마저 경호가 찾은 수진이 진짜 딸인지 궁금해한다. 


누구의 기억이 맞는지는 사실 이들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그저 믿는다.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그리고 그게 자신의 기억이라 생각한다.

믿고 싶지 않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다.


이들의 경우는 극단적인 경우지만 실제 그렇지 않나?

특히 어린 시절을 다시 추억하는 경우엔...

아니, 굳이 거기까지 가지도 않는다. 타진요나 그런 사람들처럼 증거를 밀어넣어도 이미 자신들은 믿고 있는 것만 사실이라 여길테니... 인간의 믿음은 생각해보니 참 무시무시하네.


보는 내내 머리에서 나사들이 회전하는게 느껴졌다

이리저리 보는 내내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면서 짜맞추면서 보는 연극.

정말 흥미롭고 보는 즐거움이 느껴졌던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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