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3일 

억척가 - 이자람


뮤지컬 서편제에 완전히 감동받았고, 이 사람이 원래 판소리를 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인이 "억척가"를 추천, 겨우 남은 한 자리 예매해 보았는데,

정말 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척가? 내가 모르는 판소리가 다 있다냐? 하는 생각이었다.

음, 그보다 흥보가, 심청가 등등의 비슷한 판소리 한 대목으로 생각했던 게 더 크다.

이자람이란 이름도 처음 들어보았는데, 창작 판소리라는 것을 알았던 것도 아니고.


보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이게 판소리구나. 이래서 옛 조상들이 그리 좋아했었던 거구나.

교과서에서 실컷 배웠다. 

아니리, 발림, 소리. 해설도 하고, 몸짓도 하며 노래도 부르는 종합 예술.

근데 그게 지금 살고 있는 사람에게 마음에 와 닿나. 

연극, 뮤지컬 등등을 본 사람들에게 판소리는 우리나라 전통 종합예술이란 식의 설명.

그리고 국어에서 판소리 한대목을 배울 땐 꼭 이런다.

옛 조상들은 이런 판소리를 들으면서 희노애락을 즐겼다.

그 당시의 대중문화다. 공감이 안 된다. 

저 알아듣지도 못할 말, 뭔소리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알고 웃는다냐? 

그겍 판소리 감상 시 내 생각.


중 3 때 운좋게 판소리 한 대목을 실제로 본 적이 있었을 때도 잘하는 사람이 하면 재미있구나 라는 생각과

참 익살스러운 표현이 많구나 했지만 그것도 실제 말을 알아듣기보다는 행동이나 아주 부분적인 단어를 듣고 웃었던 것.

그래서 소리꾼이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표현엔 공감이 가질 않았다.


그러나 오늘 본 억척가는 이게 판소리였구나. 하는 것을 절로 느꼈다.

판소리의 요소는 다 가지고 있다. 그 중요한 아니리, 발림 소리.ㅋㅋ

혼자서 해설도 했다가, 김안나, 억척네도 했다가, 아들도 했다가 딸도 했다가, 대장도 하고, 취사병도 하고...

대체 몇명 인물을 한 거냐... 헥헥

몸동작 하나, 목소리 톤 하나로 여러 인물들을 소화해냈다.

울다가 웃다가, 비꼬다가, 화내다가....

다른 소도구는 거의 없고 부채 하나로 분위기를 전환.

한 사람이 표현하는데도 각각의 인물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그냥 다가오더라.

진짜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전 이자람 관련 동영상을 찾다가 TED 영상의 짤막한 사천가 한 토막을 보지 않았다면 

억척가라는게 이런 거였어? 라고 오늘 정말 커다란 충격을 받고 왔을 듯 싶다.

그걸 보고 대충 창작 판소리라는 걸 알고 갔으니 그나마 다행?


억척가가 사실은 원작이 따로 있었다. 이전의 사천가 역시 브레히트라는 작가의 작품이었다고.

그런데 외국작품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물론 이름이나 배경을 친숙한 장소로 옮겨 놓은 것도 있지만,

작품 전반적으로 흐르는 정서, 느낌이란 게 그랬다.

억척스럽게 살던 여인네의 모습이 그저 남 이야기 같지 않아서.


프로그램북이나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원작에선 이 억척네의 모습을 그리 좋게 그리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 억척가에서 이 억척네는 그저 돈만 밝히던 억척네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

돈이야 밝히긴 밝히지. 근데 그 전쟁, 아수라장 속에서 살기 위해선 그렇게 살았어야 했지.

다른 게 보이질 않아. 그러나 그 악착같이 좀 살아보고자 발버둥 치는데서 억척네가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던 게 탈이지만. 근데 그게 참 안스럽다. 불쌍하다.

자식 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사람답게 살아보자"라고 하는 억척네가 참...


흥보가 심청가 춘향가 등이 그 당시 시대 사람들에게 울리는 공감이 있었겠지.

그리고 그 노래 들 속의 언어들이 그 당시 사람들의 언어였을테고.


억척가는 지금 현대 언어로, 그리고 지금 시대를 노래하기에 공감할 수 밖에.

전쟁, 피만 흘리지 않지, 서로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살고 있지 않은가.

이기고, 잘 살기 위해. 그러다가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잘 사려고 노력하는지 그런 것은 잊어버리고.


판소리 공연이라서 좋았던 게 아니라 

공연을 보러 갔는데 그게 이야기도 표현도, 연출도 좋은 공연이었고, 그게 장르가 판소리였던 공연이었다.

라는 느낌이 들어서 더 좋았던 공연.


그리고 우리것이어여서 좋아해야돼 라는 강요가 아닌

좋은 공연이고, 그게 우리 것을 사용하다 보니 정서가 공감이 가서 더욱 좋았던,

그렇게 전통문화가 변하고 발전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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