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의 "조신의 꿈"을 바탕으로 "꿈"을 써 내려가는 이광수,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의 조신과 점점 더 동일시하게 된다.

한때는 2.8 독립선언서를 썼던 인물이었으나 훗날 친일파로 돌아서게 된 이광수.

그리고 해방이 되면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며 낙산사로 숨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 혼란스럽게 되고, 고뇌하게 되고, 그것이 조신의 욕망과 함께 어우러져 그려지고 있다.


춘원 이광수. 솔직히 이 사람의 글은 읽은 적이 없다. 사실 한국소설에 잘 손이 안가는 것도 그이유가 있지만,(한국소설은 왜 이리 불쌍한 사람이 많은지..ㅜ.ㅜ) 일단 매국노, 친일파라는 것역시 이 사람의 소설을 읽게 하고픈 마음을 들지 않게 했다. 솔직히 이름 자체도 많이 꺼림칙하다.


사실 이 연극도 먼저 예매를 하고 나중에 시놉시스를 조금 보게 된 거기도 했지만, 아마 혼자였다면 그닥 손이 가지도 않았을 터.


이광수란 인물과 별개로 연극은 참 훌륭했다. 몇 개의 이야기가 겹쳐져가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고,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훌륭했고, 무대 활용도 정말 멋졌다.


사실 연극을 이제서야 좀 보게 되었던 터라 많은 경험은 없다. 그렇기에 들어가자마자 보게 되었던 무대 구성에 정말 놀랐다.

관객석보다도 더 넓은 무대. 보통 배경이 움직이는데 비해, 이미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무대 설치. 조그만 무대공간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장소에 따른 무대전환이 동시에 가능했다. 연극이 펼쳐지면서 그 무대들은 시대에 따라 등장하는 인물에 따라 낙산사, 숲, 절간, 집필공간 등등 여러 다양한 장소로 변환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무대에 등장하지만 다른 장면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그 느낌 역시 좋았다. 이광수가 조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런 장면이랄지.


이광수가 친일파였고, 태평양전쟁에 우리나라 청년들을 참가하라고 독려했단 사실은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친일파라는 사실이 더더욱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게 했고. 이 연극을 보면서 사실 따라가게 되는 것은 이광수의 생각 과정이다. 연극 초반에 보면 정말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글 좀 쓰는. 그리고 어찌 보면 소심해보이기도 하고, 부인을 사랑하는 낭만도 아는 것 같고. 그저 보통남자?  해방이 되고 친일파라는 손가락질에 떳떳하지 못한 삶을 숨기고 싶어하는 그런 모습도 보였고. 부인은 연신 이야기한다. 살기위해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을 어떡하누.. 라며.


처음엔 그런가? 싶었다.


조신의 꿈은 그저 꿈으로 끝나지 않았다. 관음보살 옆의 동자승처럼. 모든 게 꿈이었길 바랐으나 그렇지 않았다.

조신과 동화된 이광수 역시 꿈으로 깨어나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꿈으로 치부하고 새로이 살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친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광수의 앞에 칼을 들고 나타난 것은 자신의 잃어버린 양심.

그는 "언제 조국이 있었는가" 라고 외친다.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라고 한다. 자기 합리화.

그의 태평양전쟁의 참가 격려의 글, 말은 그저 "살기 위한 수준"에 그친 게 아니었다.

젊은 날의 양심이 외치는 이광수의 말들은 끔찍했다. 

그건 "그저 살기 위한" 친일이 아니었다.

일본피가 나올 수 있도록 희생하라는 그런 이야기는 완전 적극적이다 못해 구역질이 날 정도의 이야기.


본래 조신의 꿈 이야기는 "욕망은 허무하다."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광수의 "조신의 꿈" 이야기는, 그리고 이광수 본인의 이야기는 "잘못된 욕망"에 대해 말하는게 아닌가 싶다.

단순히 허무한 욕망, 가져서 뭘하나? 그런 것보다는....


많은 생각을 하며 봤다. 그리고 뭔가 꺼림칙한 소재임에도 즐겁게.

원효와 의상의 장면은 익살스럽고 재미있지만 사실 극 전체의 주제를 다루는 것 같고.

적절한 때에 등장, 긴장도 풀어주고, 활력도 주고.


근데 참, 원효는 그야말로 자기 욕망대로 산 인물 아닌가?ㅡ.ㅡ 

요석공주와도 썸씽.

불교 대중화도 시켰고.

그래도 성공했네?^^;;


이해력이 딸려 전체적인 의미는 한 마디로 정리하지 못하겟다.


하지만 조신의 이야기와 이광수, 욕망에 대한 원효와 의상의 이야기.

적절하게 이야기가 감겼다 풀렸다 하면서 긴장감도 좋고, 여러 생각도 들게 만든 연극.

무대도 좋고, 연기도 좋고, 여러 생각도 하며, 꺼림칙하면서도 즐겁게 봤던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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